밀란 쿤데라 언론 리뷰 모음

비평

 

[허연의 명저산책] 밀란 쿤데라의 소설은 충격이었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은 충격이었다.  소설을 읽으며 엄청나게 밑줄을 그어야 했고, 입버릇처럼 "영원한 회귀는 신비스러운 사상이고…"로 시작하는 첫 페이지를 줄줄 외우고 다녔다. 

그만큼 소설은 주옥 같은 잠언의 연속이었다. 

 

[참존가_박웅현] 마지막 장 덮으면, 다시 첫 장 펼치고 싶은 책

 "네 번을 읽은 책이다. 한 번은 읽었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한 번은 정말 궁금해서. 한 번은 놓친 게 너무 많은 것 같아서. 마지막 한 번은 강독을 하기 위해서. 그렇게 읽으며 나에게 울림을 주었던 문장에 줄을 치고 그걸 타이핑해 두었다. 10포인트 글자로 A4용지 30페이지 분량. 강의를 한다면 세 시간으로도 모자라는 양이었다. 그 감동을 어찌 전할까? 이 엄청난 매력 덩어리를 이 짧은 원고에 어찌 담을까?" 

 

[신형철의 문학 사용법 910호] 못 참겠어, 진지함에 대한 진지함
확실히 예술가들은 어떤 경우 진지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들이 못 견뎌 하는 것은 ‘진지함 그 자체’가 아니라 ‘진지함에 대한 진지함’이다. 어디에선가 ‘진지해져라’라는 소리가 들릴 때 그들은 그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소리를 지른다. ‘진지함’과 ‘진정함’은 다르지 않은가, 진지하지 않은 방식으로 진정해지는 법을 발명할 수는 없는가, 하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_정혜윤] 역사의 진보와 순응형 인간
2011년을 보내며 가장 많이 생각난 작가는 밀란 쿤데라였다. 세계적인 혁명과 세계적인 죽음이 많았고 그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궁금했기 때문일 것이다. 쿤데라에 따르면 20세기 전까지 인류는 두 가지 부류, 현상을 유지하려는 자와 그것을 바꾸려는 자로 양분되었다

 

[느림_장석주] 기묘한, 매우 기묘한, 믿을 수 없는 하룻밤
‘느림’을 펼치는 순간 우리는 익명의 서술자 목소리와 만난다. 일인칭 화자 ‘나’는 성에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아내와 함께 자동차를 타고 가는 중이다. 백미러를 통해 바라본 뒤를 따르는 자동차들은 추월의 기미를 엿보고 있다. 추월하려는 운전자들은 빨리 가지도 않고 추월의 기회도 주지 않는 앞 차의 운전자를 저주한다.
 

[농담] 무덤에서 꽃을 훔쳐 연인에게 주는 소녀
첫 번째 프랑스어판이 나왔을 때 루이 아라공은 이 책을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소설 중 하나라고 격찬하였다. 그러나 스탈린주의의 규탄이라는 반응에 대해서 쿤데라는 ‘농담’은 사랑의 얘기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묘지에서 꽃을 훔쳐 애인에게 선물로 준 소녀를 체포한 실제 사건에 영향을 받아 작품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느림] "앞으로만 나아가는 삶을 잠시 정지시키는 자세"
'느림'이라는 건 바로 그 중앙선을 지켜가면서, 다른 사람과 함께 가꾸어 나가는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자세이다.
여기에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행위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 돌아보는 행위가 바로 앞으로만 나아가려고 하는 행위를 뒤에서 잡아끄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농담] "지나간 날들이여, 왜 그토록 웃기고 잔인한가"
믿을 수 있겠는가. 아무렇지 않게 엽서에 적어 보낸 세 문장이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면. 혁명처럼, 마술처럼, 재앙처럼. 단지 농담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자신의 세계에서 추방당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로부터 적이 되었다. 그리고 친구와 가족을 잃었다. 이것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인생이여.

 

 

 

 


 

 

 

 

 

 

 

 

만남 Une Rencontre

작품

 

만남

원제 Une Rencontre

 밀란 쿤데라 | 옮김 힌용택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2년 3월 23일 | ISBN 978-89-374-8414-8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32x225 · 240쪽 | 가격 16,000원

 

 

 

 

 

 

 

 

 

 

 

 

 

 

 

예술이 사라져 가는 세상,
거장 쿤데라가 만난 천재 예술가들 이야기

 

 

소설가이자 극작가, 에세이스트이자 망명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 밀란 쿤데라의 영혼을 뒤흔든 세기의 만남들.
쿤데라의 첫사랑, 위대한 음악가 야나체크,
인간 본연의 모습을 난폭하게 드러내는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
미국적 에로티시즘을 하나의 역사로 그려 낸 소설가 필립 로스,
그 어떤 작가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언어적 자유를 누린 샤무아조,
소설사의 또 다른 시대를 연 카프카…….


예술-이후의 시대, 예술의 필요성, 감수성, 예술에 대한 사랑이
사라지기 때문에 예술조차 사라져 가는 이 시대,
쿤데라의 날카로운 시각과 풍부한 지식, 신랄한 유머를 통해 만나는
현대 예술계의 거장들.

 


▶ “자신의 지성에 대한 도전이자 놀랍고 흥미로운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도 큰 즐거움을 주는 작품.” ―《뉴욕 타임스》

 

 


“나는 만남이라고 표현했다.

교류도 아니고 우정도 아니며, 동맹조차도 아니다.

만남, 다시 말해 스파크고 섬광이고 우연이다.” ―작품 속에서

 

밀란 쿤데라가 『소설의 기술』(1986), 『배반의 약속』(1993), 『커튼』(2005)에 이어 네 번째 에세이를 펴냈다. 바로 『만남』이다. 전작들이 쿤데라 소설의 정체성, 중부 유럽 소설의 현재 위치, 나아가 소설이라는 예술 장르의 의미를 말하고자 했다면 『만남』은 쿤데라 인생에 잊지 못할 방점을 찍어 준 예술가, 혹은 예술 작품들과의 “스파크고 섬광이고 우연”인 만남들, 작품 발문을 인용하자면 그의 “성찰과의, 추억과의, 오랜 주제와의, 오랜 사랑과의 만남”들을 소개한다.
쿤데라가 경탄한 작가 베케트, 브로흐, 이오네스코, 말라파르트, 쿤데라와 교류했던 동시대를 움직였던 작가 르네 데페스트르, 카를로스 푸엔테스, 루이 아라공, 뿐만 아니라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과 작곡가 야나체크 등, 쿤데라와 여러 거장들과의 만남은 21세기의 독자이자 청중인 우리들에게 또한 강렬하고 아름다운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천재들을 내친 유럽, 예술-이후의 시대, 예술이 사라진 세상

 

1999년 파리의 한 주간지가 ‘세기의 천재들’이라는 자료를 발간했다. 열여덟 명이 수상자 명부에 올랐

다. 그런데 여기에는 소설가도 없고 시인도 없고 극작가도 없다. 철학자도 없다. 건축가는 단 한 명 있

다. 화가는 단 한 명이지만 디자이너는 두 명 있다. 작곡가는 없지만 성악가는 한 명 있다. 영화인은 단

한 명 있다. 이 명부는 매우 분명하게 현실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유럽과 문학, 철학, 예술의 새로운 관

계다. ― 작품 속에서

 

‘세기의 천재들’ 자료에 따르면 이 천재들이란 코코 샤넬, 마리아 칼라스, 프로이트, 마리 퀴리, 빌 게이츠, 피카소, 이브 생로랑, 록펠러, 큐브릭, 토머스 에디슨 등이다. 쿤데라는 이 명부가 “매우 분명하게 현실적인 변화를 예고했다.”라고 말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문화의 천재들을 조금의 후회도 없이 멀리 내친” 것이다. “세기병과 도착증, 그리고 그 죄악과 함께 모두 명성이 더러워진 문화적 우두머리들”보다 “코코 샤넬과 그녀 드레스의 순수함”을 사람들이 선호한 것에서 쿤데라는 “그나마 위안”을 받는다. 쿤데라에 따르면 유럽은 검찰관들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유럽은 더 이상 사랑받지 않고 있다. 유럽은 더 이상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예술이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쿤데라는 그 대표적인 예로 영화 기술을 꼽는다. 『만남』에서 쿤데라는 1895년뤼미에르 형제가 발명한 것은 “예술이아니”라 “기술이었”다고 단언한다. 예술로서의 영화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중요성은 기술로서의 영화의 중요성보다도 훨씬 더 제한적이고, 그 역사가 모든 예술 역사 중에서 가장 짧다는 것이다.


이러한 “활동사진”의 발견이 없었다면, 지금 세상은 현재 모습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기술

은 우선, (스폿 광고, 텔레비전 드라마처럼 저질 문학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바보 만들기

의 주요한 동인이 되었으며, 두 번째로 (불리한 상황에서 정적을 비밀리에 촬영하고, 테러 행위가 일어

난 후 들것에 누워 있는, 옷이 반쯤 벗겨진 여자의 고통을 불멸화하는 카메라처럼) 전 지구적인 무례

함의 동인이 되었다. ― 작품 속에서

 

스토리텔링으로서의 영화가 아니라 화려한 3D 기술로서의 영화가 주목받고, 작고 간편한 휴대용 기기가 책, 편지, 오디오의 기능을 독점해 가는 현 시대, 사람들은 점점 더 순수 문학으로서의 소설과 시를 읽지 않고 있다. 쿤데라가 “예술-이후의 시대에 있다는 느낌, 예술의 필요성, 감수성, 예술에 대한 사랑이 사라지기 때문에 예술이 사라진 세상에 있다.”라고 말한 것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쿤데라는 이렇게 예술이 사라져 가는 세상, 예술-이후의 시대에서도 자신의 영혼을 뒤흔들고, 자신의 인생에 깊은 “흔적”을 남긴 예술계의 거장, 혹은 그들 작품과의 만남을 통해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예술, 그 속에 숨은 인간 본연의 모습과 마주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소설가이자 극작가, 에세이스트이자 망명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 쿤데라의 영혼을 뒤흔든 세기의 만남들

 

쿤데라는 자신의 첫사랑이 작곡가 야나체크라고 고백한다. 야나체크는 그의 첫사랑일 뿐만 아니라, 그의 고국을 그의 “미학적 유전자에 영속적으로 각인”한 사람이기도 하다. 야나체크는 일생을 체코 브르노에서 보냈다. 젊은 피아니스트였던 쿤데라의 아버지는 그곳에서 야나체크의 초기 연구자들과 지지자들과 어울렸다. 쿤데라는 야나체크가 세상을 떠난 지 일 년 후에 태어났고, 유년 시절부터 매일 아버지나 아버지의 제자들이 피아노로 연주하는 야나체크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다. 1971년, 침울했던 점령 시절, 아버지 장례식을 치르면서 쿤데라는 일체의 담화를 금지했다고 한다. 단지 음악가 넷이 화장터에서 야나체크의 현악4중주곡을 연주하기만 한 것이다. 쿤데라에 따르면 야나체크는 인간(삶)의 노쇠, 추함, 우스꽝스러운 면을 음악으로 훌륭하게 환원한 작곡가다.

 

『만남』에서 쿤데라가 주목한 화가는 프랜시스 베이컨이다. 쿤데라는 미셸 아르솅보의 제안으로 한 잡지에 베이컨에 대한 에세이를 썼고, 베이컨은 이를 읽고 “스스로를 발견한 드문 글 가운데 하나”라고 전해왔다고 한다. 『만남』에는 바로 그때의 에세이와, 훗날 덧붙인 글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쿤데라는 베이컨의 뮤즈였던 여인 헨리에터 모레스의 초상 삼부작을 보고 깊은 영감을 받았다. 쿤데라는 베이컨의 초상화가 ‘자아’의 한계에 대한 ‘질문’이라고 말한다.

 

화가의 시선은 난폭한 손처럼 얼굴에 놓여 있었고, 얼굴의 정수를, 내면 깊은 곳에 감추어진 그 다이

아몬드를 빼앗으려 하고 있었다. 물론 내면 깊은 곳이 정말 무엇인가를 감추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

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 모두에게는 이런 난폭한 몸짓, 타인의 내면과 배후에 숨겨진 무

엇인가를 찾고자 하는 희망을 품고 타인의 얼굴을 마구 구기는 이런 손의 움직임이 있다.

(중략)

어느 정도까지 왜곡될 때, 한 개인은 여전히 그 자신으로 남아 있을까? 어느 정도까지 왜곡될 때, 사랑
하는 존재는 여전히 사랑하는 존재로 남아 있을까? 소중한 얼굴이 질병 때문에, 광기 때문에, 증오 때
문에, 죽음 때문에 멀어질 때, 얼마나 오랫동안 그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까? ‘자아’가 더 이상 ‘자아’이
기를 멈추는 경계는 어디인가? ― 작품 속에서

 

『만남』은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강하게, 문학에 대한 쿤데라의 애정을 드러내는 작품이기도 하다. 쿤데라는 도스토옙스키의 『백치』를 통해 우스운 일이 전혀 없는데도 웃음을 터뜨리게 되는 역설적인 희극적 상황, 즉우리가 “어쩔 수 없이살아야만하는 유머없는웃음의 세계”를포착해낸다.셀린을 통해서는 고문과 전쟁과 죽음을 겪어야 했던 세대의 운명을, 필립 로스의 작품에서는 “정체가 드러나고 환상이 깨져 버린 우리 자신의 벗은 몸”, 그 욕망과 마주한 “버림받은 인간이 자신의 몸을 마주할 때 느끼는 기이한 고독”과 만난다. 한편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두고는 “소설 예술의 극치인 동시에 소설의 시대에 보내는 작별 인사”라고 평한다.
뿐만 아니다. 『백조의 날개』를 쓴 아이슬란드 소설가 구드베르구르 베르그손, 스페인 작가 후안 고이티솔로, 루마니아 출생 그리스 작곡가 이안니스 크세나키스 등 어쩌면 국내 독자들에게 약간은 낯설지도 모를 예술계 거장들이 쿤데라의 눈과 귀와 손을 거쳐 우리를 매혹한다.

 

 

발췌로 만나는 짧지만 강렬한 『만남』 속 ‘만남’들

 

흐라발

흐라발을 읽을 수 있는 세상은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세상과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카프카

카프카와 더불어 우리는 소설사의 또 다른 시대로 들어간다.

 

야나체크

무엇을 통해 내 고국이 내 미학적 유전자에 영속적으로 각인되었는지를 내게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할 것이다. 야나체크의 음악을 통해서라고.

 

라블레

왜 라블레일까? 왜냐하면 그는 소설 예술에서 진지하지 않은 것의 개척자이고 설립자이며 화신이기 때문이야. 이 두 가지 준거에 의해 루슈디는 진지하지 않은 것의 원칙 자체를 강조해. 그리고 진지하지 않은 것은 바로, 역사 내내 무시되어 왔던 소설 예술의 가능성들 중 하나야.

 

필립 로스

필립 로스는 미국적 에로티시즘에 관한 위대한 역사가다. 아울러 그는 버림받은 인간이 자신의 몸을 마주할 때 느끼는 이 기이한 고독을 노래한 시인이기도 하다.

 

밀라시우스

밀라시우스 시의 체코어 번역판은 내게 아주 깊은 흔적을, 어쩌면 당시 내가 탐독하던 아폴리네르나 랭보 또는 네르발이나 데스노스의 시보다도 더 깊은 흔적을 내게 남겼다.

 

「바르샤바의 생존자」

아널드 쇤베르크의 오라토리오인 「바르샤바의 생존자」는 음악이 홀로코스트에 바친 가장 위대한 기념
물이다.

 

「훌륭한 솔라보」

샤무아조의 「훌륭한 솔라보」는 문화사에서 가장 큰 사건들 가운데 하나를 다룬다. 끝나 가는 구술 문학과 태어나는 기술 문학의 만남이다.

 

「오줌 누는 여인」과 「게르니카」

흥분, 공포, 혐오, 충격 같은 미학 너머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예술은 늘 경계해야 한다. 나체로 오줌 누는 여자의 사진은 발기하게 만들 수 있지만, 피카소의 「오줌 누는 여인」에서 동일한 효과를 끄집어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비록 이 그림이 훌륭하게 에로틱한데도 말이다. 영화에서 대학살 장면이 나오면 우리는 시선을 돌리지만 똑같은 공포를 보여 주는 「게르니카」 앞에서는 시선이 즐거워한다.

 

 

리뷰


▶ 넘치는 지성과 신랄한 유머로 만나 보는 ‘창작’ 저 너머의 세상. ―《르 포앵》

▶ 이미 널리 읽히고 평가 내려진 작품들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분석. ―《리르》

▶ 짧지만 깊이 있는 이 에세이 속에는 경탄과 경의 어린 목소리, 그리고 그와 함께 날카로운 비판과 우려 섞인 목소리가 함께 담겨 있다. ―《르 마가진 리테레르》


▶ 마치 주술을 거는 듯한 독창적인 에세이. ―《가디언》

▶ 눈을 뗄 수 없이 강렬하며 독자들로 하여금 ‘진짜 ’ 생각과 감정을 환기시키는 예기치 못한 만남.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 이 책을 읽는 것은 자신의 지성에 대한 도전이자 놀랍고 흥미로운 경험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큰 즐거움이다. ―《뉴욕 타임스》


차례


1부 화가의 난폭한 몸짓_ 프랜시스 베이컨에 대해서 9

 

2부 소설, 실존 측정기들 35
      희극성의 희극적 부재(도스토옙스키, 『백치』)
      죽음과 호화로움(루이페르디낭 셀린, 『성(城)에서 성(城)으로』)
      가속되는 역사 속의 사랑(필립 로스, 『욕망의 교수』)
      인생의 나이에 대한 비밀(구드베르구르 베르그손, 『백조의 날개』)
      순정적인 사랑, 공포의 자식(마레크 비엔치크, 『트보르키』)
      추억의 와해(후안 고이티솔로, 『그리고 막이 내릴 때』)
      소설과 생식(生殖)(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

 

3부 블랙리스트들, 혹은 아나톨 프랑스에게 바치는 디베르티멘토 65

 

4부 완전한 상속의 꿈 101
      라블레와 미조뮈즈들에 대한 대화
      베토벤에게 있어서 완전한 상속의 꿈
      원(原)-소설,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생일에 부치는 공개 편지
      유산의 전적인 거부 혹은 이안니스 크세나키스

 

5부 복합적인 만남처럼 아름다운 127

 

6부 다른 곳에서 151
     베라 린하르토바가 말하는 해방 망명
     한 이방인의 건드릴 수 없는 고독 
     내밀함과 우정
     꿈을 뒤지는 초현실주의자들과 라블레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
     위대한 두 봄에 대해서 그리고 슈크보레츠키 부부에 대해서
     그대는 아래에서부터 장미 향을 맡을 것이다

 

7부 나의 첫사랑 177
     외다리의 위대한 달리기
     향수에 젖게 하는 최고의 오페라

 

8부 쇤베르크를 잊음 199
     이것은 내 축제가 아니다
     베르톨트, 그대에게서 무엇이 남을 것인가? 
     쇤베르크를 잊음

 

9부 『가죽』, 원(原)-소설 211


역자 소개

 

옮긴이 한용택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불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부르고뉴 대학교에서 앙드레 말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기대학교 대우교수, 건국대학교 연구교수를 지냈다. 현재 단국대학교 스토리텔링센터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서울대학교, 경기대학교, 건국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동화, 콘
텐츠를 만나다』(공저), 『동화 속의 문화, 문화 속의 동화』(공저), 『다문화교육의 이해』(공저)가 있으며 옮
긴 책으로 모파상의 『광인?』, 『하나님의 이력서』, 『머리카락』, 『살아 있어 미안하다』, 『로맨틱 에고이스
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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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당한 유언들 Les testaments trahis

작품

 

배신당한 유언들

원제 Les testaments trahis

 밀란 쿤데라 | 옮김 김병욱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3년 3월 29일 | ISBN 978-89-374-8412-4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32x217 · 420쪽 | 가격 16,000원

 

 

 

 

 

 

 

 

 

 

 

 

 

 

■ 카프카, 유언을 남기다


세상을 떠나기 전, 카프카는 자신의 작품을 없애기로 결심하고 유언을 남겼다. 정확히 말하면, 사적인 편지를 두 통 남겼다. 발송된 적이 없기에 진짜 편지라고 할 수도 없다. 카프카의 유언 집행인 브로트는 친구가 죽은 후인 1924년에, 서랍에서 다른 서류 더미들과 함께 그 편지들을 찾아냈다. 잉크로 쓰인 한 통은 브로트의 주소가 적힌 채 접혀 있었고, 다른 한 통은 연필로 좀 더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내가 쓴 모든 것들 가운데, 유효한(gelten) 것은 다음 책들뿐이다. 『판결』, 『운전기사』, 『변신』, 『감화원』,
『시골 의사』, 그리고 「단식 광대」라는 단편 하나.(『명상』 몇 부 정도는 남겨도 무방하다. 나는 누구에게도
그것들을 폐기처분하는 수고를 끼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단 한 부도 재판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 작품 속에서


하지만 브로트는 “내가 그의 단어 하나하나를 광적으로 숭배했다는 것을” 카프카가 알았다거나 “만약 그의 의사가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진심이었다면 당연히 다른 유언집행인을 선택했을 것이다.” 등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친구의 유언을 집행하지 않았다. 카프카의 작품들은 출판사나 편집자의 취향과 의도에 따라 한 권 혹은 여러 권에 나뉘어 실리며 끊임없이 재판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카프카 자신이 세상에서 영원히 없애 버리고 싶어 했던 내밀한 편지, 아버지에게 썼으나 차마 보내지 못해 그 아버지마저 미처 읽어 보지 못한 편지마저 카프카의 사후 온 세상에 공개되었다.

 

 

■ 배신당한, 배신당하는, 배신당할 유언들


저작권이 법률로 규정되기까지는 저자를 존중하려는 어떤 정신 상태가 필요했다. 수 세기에 걸쳐 서서히
형성된 이 정신 상태가 오늘날에는 풀리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브람스의 교향곡 악절들을 화장
지 광고 반주로 쓰지는 않을 것이다. 스탕달 소설의 축약본 발간을 박수로 환영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
를 존중하는 정신 상태가 여전히 존재한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이렇게 자문할 것이다. 브람스가 동의할까?
스탕달이 화내지 않을까? — 작품 속에서


과거 텍스트 중심이었던 문화 예술계는 이제 시청각 산업이 성장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 거대 산업은 “완전히 새로운 게임 규칙들”을 요구한다. 사람들이 예술이라 부르는 것은 날이 갈수록 ‘독창적이고 유일한 개인의 표현’으로 존중받지 못한다. 수억 원이 드는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는 자기 작품의 권리(자신이 쓴 것에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받을 수 없게 된다. 저자는 아니지만 분명 그 영화의 “주인”인 제작자의 의사에 반해 뭔가를 요구할 수 없는 입장에 놓인다.


오늘날 저자들은 비록 자신들의 권리를 제한받지는 않지만 저작권이 과거 권위를 더는 누리지 못하는 다른 세계 속에 갑작스럽게 들어오게 되었다. 저자의 도덕적 권리를 침해하는 자들(각색자들, 유명 저자들의 출간 전 원고를 획득한 “쓰레기통 털이들”, “수천 년 이어져 온 세습 재산을 자신의 장밋빛 타액으로 녹여 버리는 광고”, 재간행을 일삼는 잡지들, 영화인들의 작품에 관여하는 제작자들, “미친 인간”처럼 너무나 자유롭게 텍스트를 다루는 연출자들 등등)은 마찰이 일어날 경우 여론의 관용을 입는 데 반해, 자신의 도덕적 권리를 요구하는 저자는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할뿐더러 법 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사람들은 죽은 이를 쓰레기나 상징 나부랭이 취급한다. 이는 사라진 그의 개인성에 대한 동일한 불경(不敬)이다. — 작품 속에서

 

 

■ 작품의, 혹은 유언의 수호자들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의 모든 작품을 “파괴할 수 없는 하나의 전형”으로서 보존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나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습니다. ‘이보시오, 여긴 당신 집이 아니오.’ 나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없습니다. ‘자, 여기 내 악보가 있으니 이걸로 당신 마음 내키는 대로 하시오.’라고. 다시 한 번 말합니
다. 「카드놀이」를 악보 그대로 연주하든가, 아니면 아예 연주하지 마십시오. — 작품 속에서

 

사뮈엘 베케트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극작품 텍스트에 무대 지시들을 점점 더 자세히 달았으며, 그 무대 지시들이 엄격히 준수될 것을 고집했다. 이 고집은 일반적인 관용이나 이해의 경우를 넘어, 베케트는 직접 예비 공연을 참관하고 나서야 연출에 동의하는 경우가 허다했으며, 때로는 자신이 직접 연출을 맡기도 했다. 심지어는 자신이 직접 지휘한 「파티의 끝」 독일어 판 연출을 위한 주석들을 책으로 펴내, 그 누구도 수정하거나 바꿀 수 없도록 했다. 베케트의 친구이자 편집자인 제롬 린던은 필요한 경우 소송도 불사하며 저자의 의사가 그의 사후에도 존중되도록 감시하고 있다.

 

 

■ 유언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의 ‘현존’을 확인하다

 

쿤데라는 죽은 이의 뜻을 따르는 것은 “두려움이나 속박 때문이 아니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죽음을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망자의 마지막 의사에 대한 복종은 “신비적”이며 “모든 합리적, 실제적 성찰을 초월”한다. 쿤데라의 소설 『웃음과 망각의 책』에는 타미나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남편을 여읜 뒤 그녀는 흩어진 추억들을 필사적으로 그러모아 사라진 존재를, 끝난 과거를 재구성해 보려 한다. 그러다가 그녀는 죽은 이의 “현존”은 추억을 통해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추억은 그 사람의 “부재”에 대한 확인일 뿐이다. 추억 속 망자는 “희미해져 가는, 멀어져 가는, 잡을 수 없는 과거”일 뿐이다.


쿤데라는 『배신당한 유언들』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연인, 가족, 혹은 예술가들)을 죽은 사람으로 여길 수 없을 때, 그의 현존은 바로 “내가 잘 알고 충실하게 지킬 그의 의사를 통해서”, 즉 그의 “유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 쿤데라와 마그리트, 두 거장의 만남 — 쿤데라 전집만의 아주 특별한 품격

 

쿤데라 전집의 모든 작품 표지에는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1898~1967)의 작품이 쓰인다. 마그리트 재단은 도서 등에 대한 마그리트 작품의 2차 가공을 허락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쿤데라 전집에 대한 사용을 특별히 허가해 주었다. 또한 쿤데라 역시 마그리트 작품이 사용된 자신의 전집 표지 시안을 보고 “이전에 본 적 없을 정도로 훌륭하고 아름답다.(they are great, they have ever been. We saw everything and everything is more that wonderful.)”라고 격찬했다.


마그리트 작품의 신비한 분위기, 모던하면서도 세련된 색채, 고정관념을 깨는 소재와 구조, 발상의 전환, 그 속에 숨은 유머와 은유가 쿤데라의 작품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이제껏 한국 문학 시장에서 볼 수 없었던 아름답고 품격 있는 문학 전집이 탄생되었다. 이로써 독자들은 쿤데라의 작품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힘을 얻어 새롭게 태어나는 마그리트의 작품까지 함께 소장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쿤데라 전집 12 『배신당한 유언들』의 표지 이미지로는 마그리트 작품 중에서도 유명한 「골콩드」(Golconde)가 쓰였다.

 

■ 차례

 

1부 파뉘르주가 더는 웃기지 않는 날.........................7
2부 성 가르타의 망령.................................................53
3부 스트라빈스키에게 바치는 즉흥곡.........................81
4부 한 문장................................................................143
5부 잃어버린 현재를 찾아서......................................179
6부 작품과 거미.........................................................217
7부 가문의 천덕꾸러기...............................................265
8부 안개 속의 길들....................................................299
9부 이보시오, 여긴 당신 집이 아니오........................357

 

■ 역자 소개

 

옮긴이 김병욱
프랑스 사부아 대학교에서 현대시를 전공하고 성균관대학교 연구 교수를 지냈다. 옮긴 책으로 밀란 쿤
데라의 『느림』, 『불멸』,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
였는가?』,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아메리칸 버티고』, 가스통 바슐라르의 『불의 정신분석』, 에드위 플레
넬의 『정복자의 시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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