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데라 소설의 핵심어들 : 『우스운 사랑들』에서 『향수』까지 (3)

비평

 

3 느림, 정체성, 향수

 

     한 시인의 잉태, 탄생, 성장, 죽음을 다룬 『삶은 다른 곳에』(1973)의 마지막 7부에서 작가는 주인공 야로밀과 레르몬토프를 병치한다. 후자는 해묵은 질투와 사소한 말다툼 때문에 동기생(마르티노프)과 결투를 벌이다 스물일곱의 나이에 어이없이 사망한 러시아 낭만주의의 최고 시인이다. “그렇지만 야로밀이 레르몬토프의 패러디일 뿐이라고 해서 우리가 그를 비웃어야 할까? 화가가 가죽 코트를 입은 앙드레 브르통을 모방했다고해서 우리가 화가를 비웃어야 할까? 앙드레 브르통 역시 자기가 닮고 싶어 했던 어떤 고귀한 것의 모방이 아니었는가? 패러디란 인간의 영원한 운명이 아닌가?”(3, 494쪽) 이 ‘서정적 청춘’의 내적 근간을 이룬 패러디가 환갑을 훌쩍 넘긴 쿤데라의 소설에서는 문학적 형식(패러디 문학)이 된 것같다. 『느림』, 『정체성』, 『향수』는 애당초 프랑스어로 쓴 소설로서 전성기의 걸작에 비하면 거의 소품처럼 보이지만 삶과 인간관계의 본질에 대한 그의 통찰은 더 날카롭게 표현된다. 정치와 성의 긴장도 약해져 ‘건전’해졌다는 느낌도 준다.
     가령 『느림』은 18세기 작가(비방 드농)의 단편소설 한 편(「내일은 없다」)을 자기 식으로 다시 풀어쓴 소설이다. 18세기의 한 성(城), T 부인은 남편에게 자기 정부(후작)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 젊은 기사를 이용, ‘멋진 하룻밤’을 보낸다.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를 연상시키는 질문인바, 과연 무엇이 진실인가. 작가의 답은 간명하다. “그녀(T 부인)는 남편에게 거짓말했고, 정부인 후작에게 거짓말했고, 그 젊은 기사에게 거짓말했다. 그녀야말로 에피쿠로스의 참 제자다. 쾌락의 사랑스러운 친구. 다정한 거짓말쟁이 여성 호위병. 행복을 지키는 여인.”(8, 159쪽) 이 소설이 이백 년의 세월을 거슬러 호텔이 된 똑같은 공간에서 여러 남녀를 통해 다시 반복되면서 ‘실존 수학’의 느림과 빠름, 기억과 망각의 방정식(“느림의 정도는 기억의 강도에 정비례하고, 빠름의 정도는 망각의 강도에 정비례한다.”(8, 49쪽))을 환기한다.
     『정체성』의 여주인공 샹탈은 다섯 살 된 아이를 잃은 아픈 기억이 있다. 아이를 잊으려면 어서 빨리 다른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가족의 위안 섞인 충고에 발끈하고, 다름 아닌 남편이 그런 말을 했을 때 그를 떠날 결심을 한다. 현재 그녀는 네 살 연하의 장마르크와 같이 사는데, 혼자 바닷가(노르망디 해안)를 거닐다가 새삼스러운 사실을 깨닫고는 좌절한다. “남자들이 더 이상 나를 돌아보지 않더라.”(8, 29쪽) 이 말에 장마르크도 좌절(“당신을 찾아 해변을 수킬로미터씩 헤맸고 (……) 당신을 따라 지구 끝까지라도 뛰어갈 수 있는 나는 뭐지?”(8, 29쪽))하고는 노화와 매력 상실로 슬퍼하는 연인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의 시선이 아니라 천박하고 음탕한 익명의 시선”(8, 46쪽)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한편, 어느 날 샹탈은 주소도 우표도 없는, 누군가가 직접 갖고 온 것이 분명한 편지 두 통을 받는다. 처음에는 ‘구애’가 아닌 ‘조롱’이라는 생각에 불쾌감을 느끼지만 어느덧 어딘가에 숨어 있는 ‘그’의 시선을 의식, 여자로서의 자의식과 자신감에 불이 붙음과 동시에 ‘그’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온갖 ‘희극적 상상’을 동원한다. 독자는 이내 편지의 발신자가 장마르크임을 알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사랑을 지키려는 갸륵한 마음에서 쓰기 시작한 편지가 강한 질투와 분노를 유발한다는 점이다. 길을 걷다가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불륜의 약속을 떡잎부터 잘라 버리지 않고 이름 모를 숭배자의 편지를 곱게 간직”(8, 124쪽)하는 것은 뭔가. 장마르크가 마지막 편지를 쓰기로 결심할 무렵에는 샹탈도 이미 사실을 짐작한다.
     재미난 희롱 같은 그들의 싸움은 유럽 대륙과 영국 사이의 해저 터널을 건너온 다음 화해로 끝난다. “나는 조그만 머리맡 스탠드 불빛을 받고 있는 그들 두 사람의 옆머리를 보고 있다. 베개 위에 목덜미를 기댄 장마르크의 머리, 그 위로 십 센티미터쯤 숙인 샹탈의 머리.”(8, 183쪽) 스탠드의 불을 끄겠다는 장마르크를 만류하며, 심지어 연인의 키스마저 조용히 물리치며 샹탈은 “아니, 그냥 당신을 보기만 할 거야.”(8, 183쪽)라고 말한다.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을 밑 텍스트로 한(장마르크가 서명할 때 쓴 C. D. B.는 「시라노」의 주인공 ‘시라노 드 베르제라크’의 이니셜이다.) 이 소설의 주제가 사랑임을 강조하는 장면이다. 군데군데 등장하는 쿤데라 특유의 아포리즘(“권태에는 세 가지 범주가 있다. 수동적 권태. 춤을 추고 하품하는 소녀. 적극적 권태, 연 애호가. 반항적 권태. 자동차에 불 지르고 창유리를 깨는 젊은이들.”(8, 22쪽))이 독서의 흥미를 더한다.
     현재로선 쿤데라의 마지막 소설인 『향수』에서는 십 년은 전쟁, 십년은 (칼립소와 함께한 ‘돌체 비타’의 칠 년을 포함) 방랑에 보낸 뒤 이타카로 귀향한 오디세우스의 운명이, 오래전 각기 다른 이유로 체코를 떠나 외국(프랑스/덴마크)에서 살다가 귀향한 이레나와 조제프를 통해 반복된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대한 작가의 화답이란 “오랜 부재 끝의 귀향은 이 세계와 실존의 본질적인 낯섦을 드러낼 수 있다”(12, 136쪽)는 것이다. 두 주인공의 동침도 소통의 결렬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난다. 대체로 ‘영원회귀’가 ‘영원불귀’로 탈바꿈하는 것인데, 이 지점에서 소설의 바깥, 작가의 삶을 엿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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