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구성에 관한 대담 - 2

비평

예술의 구성에 관한 대담 - 2

 

살몽 - 쿤데라(『소설의 기술』 수록)

 

 

살몽

『몽유병자들』에 대한 당신의 소감으로 돌아가지요. 당신은 가치들의 타락에 대한 에세이에 유보의 뜻을 나타냈지요. 당신 생각으로는 그 명확한 어조와 학문적 용어 때문에 그것이 이 소설의 이데올로기적인 관건, 이 소설의 ‘진실’로 받아들여질 수 있고, 『몽유병자들』의 3부작 전부가 중요한 생각을 소설적으로 단순화한 설명으로 바뀔 수 있다는 거죠. 당신이 ‘전적으로 소설적인 에세이의 기법’에 대해 말씀하신 까닭도 바로 이거죠.

쿤데라

우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어요. 즉 소설의 몸으로 들어오면 성찰의 본질이 바뀌게 된다는 겁니다. 소설 바깥에서 사람들은 확인의 영역에 있죠.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하는 말에 대해 확신합니다. 경찰이건 철학자건 수위건 다 마찬가지예요. 그러나 소설의 영역에서는 확인하지 않습니다. 놀이와 가설의 영역이거든요. 그러니까 소설적 성찰이란 본질적으로 의문적이고 가설적인 겁니다.

 

살몽

그렇지만 어째서 소설가에게는 소설에 자신의 철학을 직접적이고 긍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권리가 없는 건가요?

쿤데라

철학자가 생각하는 방식과 소설가가 생각하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사람들은 흔히 체호프, 카프카, 무질 등 많은 작가들의 철학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요. 그러나 그들의 글에서 일관된 철학을 추려 내려고 해 보세요. 그들이 비망록에서 자신들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경우에서조차도 그 생각들이란 어떤 사상을 확인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성찰의 연습, 역설의 유희, 즉흥적 생각에 가깝죠.

 

살몽    그러나 『작가 일기(Dnevnik pisatelya)』에서 도스토옙스키는 매우 직설적이죠.
쿤데라

그의 생각의 위대함은 거기 있는 게 아니죠. 그가 위대한 사상가인 것은 다만 소설가인 그를 통해서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가 인물들을 통해 범상치 않을 정도로 풍부하고 새로운 지적 세계를 창조해 낼 줄 안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인물에 투영된 그의 생각을 찾아보기를 좋아하지요. 예를 들면 샤토프 같은 인물 말이에요. 그러나 도스토옙스키는 대단히 주도면밀합니다. 처음 등장할 때부터 샤토프의 성격은 아주 가차없이 부각되지요. “그는 갑자기 어떤 웅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흔히 이것에 영원히 도취된 그런 러시아 이상주의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그 생각을 지배하지는 못하고 다만 정열적으로 신봉하기만 할 뿐이어서, 그때부터 이미 그들의 실존 전체는 그들을 반쯤 짓누르는 바위 덩어리 아래에서 당하는 고통과 다름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그러니까 도스토옙스키가 자신의 생각을 샤토프에게 투영하기는 해도 그 생각은 순식간에 상대적인 것이 됩니다. 도스토옙스키에게 있어서도, 일단 소설의 몸으로 들어오면 성찰의 본질이 달라지게 된다는 규칙, 교조적인 생각이 가설적인 생각으로 바뀌게 된다는 규칙은 지켜지는 것이죠. 딱 한 사람 예외가 있군요. 바로 디드로죠. 그의 훌륭한 소설인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을 보세요! 이 진지한 백과사전파 철학자의 생각도 일단 소설의 경계를 넘어서자 유희적으로 바뀌지요. 그의 소설에 심각한 문장이라곤 없어요. 거기서는 모든 게 유희죠. 프랑스에서 이 소설이 부끄러워해야 할 정도로 과소평가되었던 이유는 바로 이거예요. 사실 이 소설에는 프랑스가 잃어버리고 나서 되찾으려 하지 않은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작품보다 사상을 더 좋아하는데,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은 사상의 언어로는 도저히 옮길 수 없는 작품이죠. 

 

살몽

『농담』에서는 야로슬라프가 음악에 관한 이론을 펼치지요. 이러한 성찰의 가설적 성격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당신 소설에는 당신이 직접 말하는 그런 구절도 있지 않나요?

쿤데라

말하는 사람이 저 자신이라 하더라도 제 생각은 인물과 연결되지요. 저는 그를 대신해서, 그리고 그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심층적으로 그의 태도와 그가 사물을 보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이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2부는 육체와 영혼 사이의 관계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되죠. 그래요, 거기서 말하는 사람은 작가지만 그가 말하는 것은 모두 테레자라는 인물의 자장 속에서만 효력을 갖습니다. 그건 (그녀 자신에 의해 수립되는 것은 아니지만) 테레자가 사물을 보는 방식인 거예요.

살몽

그러나 당신 생각이 아무런 인물과도 연결되지 않는 경우도 종종있지요. 가령 『웃음과 망각의 책』에서 음악에 대한 생각이라든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스탈린 아들의 죽음에 대한 생각 같은 것이죠.

쿤데라

그건 그래요. 저는 가끔 작가로서, 저 자신으로서 작품에 개입하기를 좋아합니다. 이럴 경우 문제는 어조에 달렸어요. 첫마디부터 제 생각은 유희적이거나 역설적이거나 도발적이거나 실험적이거나 의문적인 어조를 띠지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6부(「대장정」)는 그 전체가 ‘키치는 하찮은 것에 대한 절대부정이다.’라는 주된 명제를 둘러싼 하나의 논설입니다. 키치에 대한 이 생각들 모두가 제게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 이면에는 많은 생각과 경험과 탐구, 심지어는 정열까지도 존재하지요. 그러나 그 어조는 결코 무겁지 않아요. 도발적이지요. 이러한 논설은 소설에서가 아니라면 생각할 수도 없는 겁니다. 제가 ‘전적으로 소설적인 에세이’라고 부른건 바로 이런 겁니다.


살몽

당신은 소설적 대위법이 철학과 이야기와 꿈의 결합이라고 말씀하셨죠. 꿈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 보죠. 『삶은 다른 곳에』 2부 전체는 몽환적 서술로 가득 차 있고 『웃음과 망각의 책』 6부 또한 그것에 바탕을 두었죠. 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도 몽환적 서술이 테레자의 꿈을 통해 소설 전체에 흐르는데…….

쿤데라

몽환적 서술이라기보다는 이성의 통제에서 벗어난 상상력, 그럴 듯함에 대한 조바심에서 벗어난 상상력이 이성적인 사고로는 접근할 수 없는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꿈이란 제가 현대 예술의 가장 위대한 성취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상상력에 지나지 않는 겁니다. 그러나 이 통제되지 않은 상상력을, 본질적으로 실존에 대한 유희적 탐구여야 하는 소설에 어떻게 통합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이질적인 두 요소를 어떻게 결합합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연금술이 필요한 겁니다! 제가보기에 이 연금술에 대해 가장 먼저 생각했던 사람은 노발리스였어요. 그의 소설 『푸른 꽃(Heinrich von Ofterdingen)』 첫 권에 그는 세 개의 꿈을 끼워 넣었죠. 사람들이 톨스토이나 토마스 만 같은 작가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꿈에 대한 ‘사실적’ 모방이 아니에요. 꿈에만 있는 ‘상상력의 기법’에서 영감을 받은 위대한 시지요. 그러나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이 세 꿈은 소설
속에서 뿔뿔이 떨어진 섬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더 나아가려고 두 번째 소설을 꿈과 현실이 서로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서로 연결되어 섞인 식으로 서술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두 번째 소설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자신의 미학적 의도를 적은 메모 몇 편뿐이죠. 그의 이러한 의도는 백이십 년 후에 프란츠 카프카에 의해 실현되었습니다. 그의 소설들은 꿈과 현실의 빈틈없는 결합입니다. 현대 세계를 향해 던져진 가장 유희적인 시선임과 동시에 가장 대담한 상상력이기도 하죠. 카프카는 무엇보다도 거대한 미학적 혁명입니다. 예술적 기적이지요. 가령 예를 들어 『성』에서 K가 프리다와 처음으로 사랑을 하는 그 놀라운 부분이나 그가 초등학교 교실을 자신과 프리다와 두 조수의 침실 바꾸는 부분을 보세요. 카프카 이전에는 그처럼 밀도 높은 상상력은 생각도 하지 못했죠. 물론 그걸 모방한다는 건 우스운 일일 거예요. 그러나 저는 카프카처럼 (그리고 노발리스처럼) 소설에다 꿈, 꿈에만 있는 상상력을 끌어들이고 싶은 욕망을 느낍니다. 그렇게 하는 저 나름대로의 방식은 ‘꿈과 현실의 결합’이 아니라 다성적 대립이죠. ‘몽환적’ 이야기는 대위법의 여러 계열 가운데 하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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