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에 대하여 _ 05 웃음과 망각의 책

비평

05 웃음과 망각의 책
웃음과 망각의 변주곡


백선희 (번역가, 덕성여대 강사)

 

     한 인물이 두 편에 등장할 뿐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주인공도 없고, 일곱 이야기의 인물들이 서로 만나는 일도 없으며 여러 이야기가 서로 얽히지도 않는 이 작품을 소설이라 부르게 해 주는 건 주제의 통일성이다. ‘웃음’과 ‘망각’, 이 두 주제가 전혀 달라 보이는 이야기들을 엮고 있다.
     쿤데라가 소설에 ‘변주’라는 음악 개념을 처음 끌어들인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독립적인 두 테마가 점진적으로 변주되면서 ‘천사’, ‘리토스트’, ‘경계선’ 같은 테마들로 발전하고, 또 다른 모티프들을 낳으며 ‘다성적’ 화음을 이루어 낸 것이 이 소설이다. 작가는 변주를 “한 테마의 내부로, 한 생각의 내부로, 하나뿐인 독특한 상황의 내부로 인도하는 여행”이라 말한다. 따라서 변주가 거듭될수록 마치 “꽃이 현미경으로 본 꽃의 모습과 닮지 않은 것”처럼 첫 이야기와 마지막 이야기의 거리는 멀어져 보인다. 그러나 독립적인 일곱 이야기들은 “서로를 설명해 주고, 명료하게 해 주고, 보완”해 주며 “철저하게 하나로 결합되어 각각을 따로 읽을 경우 의미 대부분이 사라져 버리는 그런 소설”(12, 250쪽)이다.
     베토벤을 음악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가로 꼽고, 같은 테마를 다양한 형식으로 멋지게 변주해 내는 그의 음악적 구성을 “건축적 완성도의극치”라 극찬하고, 이질적인 정서의 악장들을 엮어 내는 쇼팽의 독창적인 배치 기술에 찬사를 보내면서, 쿤데라는 여러 다른 정서에 공간을 배열하는 것이야말로 소설가의 가장 섬세한 기술이라고 말한다.(11, 131~132쪽) 이 말은 음악적 구성이 그의 글쓰기에 얼마나 중요한지 짐작하게 한다. 특히 작가 스스로 “변주 기법에 바치는 오마주”(15, 26쪽)라고 말한 이 작품의 독창성은 두 개의 테마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엮고 전개해 하나의 변주곡을 만들어 내는 작가의 변주술에, 그의 음악적 건축술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쿤데라의 소설 대부분이 그렇듯이 이 작품 역시 일곱 개의 부로 나뉘어 있고, 각 부는 음악 소절처럼 잘게 분할되어 있다. 마치 단락이 마디 같고, 마디들이 모여 소절을 이루는 느낌이다. 그는 각 부의 길이와 템포도 담긴 이야기에 따라 다르게 배치한다. 1부 19장, 2부 13장, 3부 9장, 4부 23장, 5부 18장, 6부 29장, 7부 14장의 구성이다. 다른 부들에 비해 확연히 짧은 3부의 빠른 템포는, 작가가 직접 개입해 웃음에 관한 성찰이나 조국에서 축출당한 자전적 경험을 얘기할 때의 냉소적이고 격앙된 어조를 반주한다. 작가가 이 책 전체의 주인공이자 청중으로 지목한 타미나의 이야기에 집중된 4부와 6부는 아주 길어서 느린 아다지오 템포가 여주인공의 슬픈 정서를 대변한다. 장의 길이도 제각각 달라서, 2쪽짜리 짧은 장들이 계속되거나 6~7쪽짜리 긴 장이 끼어들거나 하면서 악장 분위기를 조절한다. 예를 들면 타미나의 죽음을 예고하는 6부의 28장은 반쪽 정도로 가장 짧고, 한 문장이 곧 한 단락인 짤막한 여덟 마디로 이루어져 있다. 6부와 7부의 이질적인 정서의 대담한 배치도 눈에 띈다. 여주인공 타미나의 죽음으로 끝나는 6부 바로 뒤에, 생경하게도 얀의 성생활에 집중된 7부가 이어지면서 타미나의 죽음은 한층 더 도드라진다.
     잃어버린 편지들 - 엄마 - 천사들 - 잃어버린 편지들 - 리토스트 - 천사들 - 경계선. 여기서 반복되는 제목들은 이 작품이 같은 테마를 변주하고 있음을 환기한다. 망각을 상징하는 ‘잃어버린 편지들’과 웃음과 연관된 ‘천사들’이 두 번씩 반복되고, ‘리토스트’와 ‘경계선’의 테마가 두 테마를 발전시키며 변주에 날개를 단다.
     1부 「잃어버린 편지들」은 역사의 거대한 전환점에 자리했다가 반역죄로 역사에서 말끔히 지워지고 자신의 털모자만 고트발트의 머리 위에 남긴 클레멘티스 이야기와, 수치스러운 과거를 지우고 싶어 하는 미레크의 개인사를 중심으로, “자신을 으스러뜨리는 역사와 대면하는 인간”이라는 테마를 전개한다.
     2부 「엄마」에서는 같은 테마가 전혀 다른 시각으로 제시된다. 러시아 탱크들이 나라를 점령했을 때도 배〔梨〕를 따기로 한 약속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엄마의 시각이 옳았음이 부각된다.(“탱크는 사라지지만 배는 영원하니까.”) 다시 말해 1부가 개인의 삶을 짓밟는 탱크(역사)의 위력을 말한다면 2부는 역사가 지울 수 없는 기억의 힘에 주목한다. 어린 시절의 기억한 조각을 떠올리고 평생 다시 하기 힘든 격렬한 정사를 경험하는 카렐, 남편의 얼굴을 지움으로써 성적 자유로움을 느끼는 마르케타의 이야기를 통해 기억과 망각의 힘을 보여 준다.
     3부 「천사들」은 웃음을 테마로 전개된다. 작가는 두 가지 웃음, 사물의 부조리를 가리키는 악마의 웃음과 이 세상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고 의미 가득하다고 말하는 천사의 웃음을 구분하는데, “그들 세계의 의미를 너무도 확신해서 동참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 목을 조를 태세가 되어 있는”(《뉴욕 타임스》, 필립 로스와 나눈 대담에서) 천사의 웃음에 특히 주목한다. 똑같은 것을 생각하고 말하도록 강요당한 사람들이 천사의 웃음을 짓고 원무를 추며 날아오르는 상승과, 원무에서 축출당한 나(작가)의 추락이 대비된다.
     4부 「잃어버린 편지들」은 다시 망각을 변주한다. 프라하를 함께 탈출한 남편이 죽고 난 뒤 흩어진 추억들을 필사적으로 그러모아 사라진 존재를, 흐릿한 과거를 재구성해 보려고 애쓰는 주인공 타미나의 이야기가 길게 이어진다. 집요하게 떠들어 대는 사람들과 말없이 듣는 타미나, 글쓰기광증에 사로잡힌 사람들과 입 속에 금반지를 물고 굳게 입을 다문 타미나가 대비된다. 저마다 자기 말을 담처럼 쌓아 올려 바깥의 어떤 목소리도 들어오지 못하게 틀어막는 효과를 낳는 글쓰기 광증과 침묵의 모티프가 망각을 변주한다.
     5부 「리토스트」는 가장 이질적이고 독창적인 느낌을 주는 악장으로 작가 스스로 장마다 숫자 대신 소제목을 붙여 다른 악장들과 구분한다. 작가는 보헤미아 고유의 독특한 개념 ‘리토스트’를 끌어들여 인간 본성의 감춰진 양상을 들춰내고, 시골 유부녀 크리스틴과 대학생의 연애 이야기, 그리고 망각의 사막 속으로 떨어지기 이전 프라하 시인들의 모임을 먼 이국에서 떠올리는 작가의 회상을 엮어 환상에 토대를 둔 사랑 행위의 희극성을, 사랑과 서정시의 관계를 드러낸다.
      가장 극적이고 가장 긴 악장인 6부 「천사들」은 1부 첫 단락을 반복하며 망각의 테마를 변주한다. 고트발트 머리 위에 남은 클레멘티스의 털모자가 다시 등장하고, 나라가 전복될 때마다 거리 이름이 바뀐 프라하의 이야기, 과거는 지우고 미래만 예찬하는 망각의 대통령 이야기, 작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자전적 이야기, 음악에 대한 성찰, 타미나의 죽음에 관한 몽환적 이야기가 이어진다.
      7부 「경계선」은 새로운 등장인물 얀의 성생활을 둘러싸고 다시 웃음이 변주된다. 3부에서 다룬 웃음은 천사의 웃음이지만 이번에는 악마의 웃음이 울려 퍼진다. 이 웃음은 경계선이라는 새로운 테마로 발전된다. 모든 것의 의미를 날려 버리는 웃음의 경계선을 넘는 순간 역사도 장례식도 난교 파티도 우스꽝스러워지고 만다.
      작품 곳곳에는 서로 다른 이야기와 인물 들을 이어 주는 모티프들이 흩어져 있다. 빨간 스포츠카 모티프는 1부(미레크는 이 차로 미행자들을 따돌린다.)와 6부(타미나를 아이들의 섬으로 데려가는 청년도 빨간 스포츠카를 몬다.)를 이어 주고, 고트발트 머리 위에 남은 클레멘티스의 모자(1부)는 파세르의 관 위에 떨어진 모자(7부)와 연결되며, 카렐과 마르케타와 에바의 정사에 노라 아주머니의 기억이 함께하는 장면(2부)은 타미나와 위고의 정사에 죽은 남편의 기억이 함께하는 장면(4부)과 겹친다. 남편의 얼굴을 지우려는 마르케타의 노력(2부)은 남편 얼굴을 떠올리려는 타미나의 노력(4부)과 교차하고, 작가 아버지의 침묵은 타미나의 침묵과 겹친다.

 

     교향곡은 외부 세계의 무한을 향하고 변주곡은 내면 세계의 무한을 향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본질적인 것을 몇 개의 테마로 압축해 “사물의 핵심에 곧장 다가가게” 해 주는 변주 형식으로, “모든 것 속에 감춰진 내면 세계의 무한한 다양성”을 탐색해 낸 풍성한 결과가 이 변주 소설이다. 허구적 일화, 자전적 경험, 비평적 담론, 우화, 몽환적 이야기 등 이질적인 글들을 엮고, 템포를 조절하며 다른 인물들, 다른 상황들을 같은 테마로 변주하고 하모니를 이루어 내는 작가의 변주술은 참으로 놀랍다. 집약과 반복, 심화 과정을 통해 “끈기 있게 갱도를 파는 굴착 작업”으로 완성해낸 그의 이 변주곡은 더없이 깊어서 얼마나 파고 들어가야 그 바닥에 닿을지 알 수가 없다. 읽고 또 읽어도 덜 읽은 느낌이 드는 것은 그래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