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에 대하여 _ 13 커튼

비평

13 커튼
에세이로 풀어쓴 소설 예찬:
소설의 커튼이 열어젖히는 삶의 새로운 지평

박성창(서울대 교수)

 


     쿤데라는 1986년 『소설의 기술』을 시작으로 『배신당한 유언들』(1993), 『커튼』(2005), 『만남』(2009)에 이르기까지 소설에 관한 성찰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낸 4부작을 발표한다. 『소설의 기술』이 일종의 원재료에 해당한다면, 이후 세 편의 문학 에세이는 『소설의 기술』에서 제시된 성찰의 주제나 모티프들을 변화시키고 확장하며 심화하려는 일련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커튼』은 『소설의 기술』과 『배신당한 유언들』이후 소설에 대한 쿤데라의 성찰을 담은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최대한 간결하고 정확한 문체를 동원하며 소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군더더기 없이 표현해 고전적인 프랑스 산문의 모범을 보여 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쿤데라는 자신의 세 번째 문학 에세이에서 이론가의 추상적인 관점에서 소설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가로서 자신의 경험을 최대한 반영하여 자신이 직접 실천한 소설의 기술로부터 촉발된 사유를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낸다. 언제나 인간의 개인적인 체험으로부터 출발해 인간 실존의 보편적인 문제로 나아간다는 쿤데라의 원칙은 그의 소설뿐만 아니라 소설론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20세기 중후반 유럽 역사에서 자신이 겪은 개인적인 체험으로부터 지금 이 세계에 사는 우리 인간의 삶이란무엇인가라는 보편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특유의 방식은 소설론에서도 유지된다. 다시 말하자면 쿤데라는 몽테뉴가 그 유명한 『수상록(Essais)』에서 그랬듯이 자기 자신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소설적 진실에 육박하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커튼』을 포함한 네 편의 소설에 관한 에세이들은 쿤데라 소설과 대등한 위치와 중요성을 확보하고 있다. 뛰어난 소설가들이 소설뿐만 아니라 소설에 관한 훌륭한 성찰을 동시에 보여 주듯이 쿤데라 역시 소설 창작을 소설에 대한 성찰과 분리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대표적인 작가다.


     사실 소설과 성찰은 쿤데라에게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각별한 관계에 놓여 있기에 그의 소설론은 단순한 소설에 관한 생각이 아니라 소설과 성찰의 관계에 대한 성찰이다. 쿤데라에겐 소설 역사에 관한 매우 분명한 생각이 있다. 즉 소설은 서술에서 묘사로, 묘사에서 성찰로 이어지는 세 단계를 거쳐 전개되어 왔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모험과 행동에 대한 서술로부터 출발한 소설은 19세기에 이르러 묘사를 소설 본위에 두는 리얼리즘 소설로 이행하며, 20세기에 들어 쿤데라의 표현에 따르면 ‘성찰적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위대한 소설의 탄생으로 귀결된다. 즉 소설은 인간 실존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이에 관해 성찰하는 매우 중요한 기제이며,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사유에 몰두하는 철학과는 달리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인물들의 유희를 통해 성찰해 가는 독특한 장르다. 소설은 소설 나름의 방식으로 성찰하기에 그의 소설론은 소설 특유의 성찰 방식과 의미에 대한 성찰이다.


      쿤데라의 소설론은 단순히 소설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 통상적인 소설론이 아니라 뛰어난 소설 예찬론이다. 소설은 다른 여러 문학 장르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소설만의 독특한 특수성과 자율성을 지닌 예술이라는 점을 쿤데라는 줄곧 강조한 바 있다. 즉 소설은 음악이나 미술처럼 자신만의 ‘언어’를 표현 수단으로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험적인 자아를 통해 인간 실존의 중요한 주제들을 깊이 있게 탐색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자신만의 ‘방법론’을 보유한다. 또한 라블레와 세르반테스를 거쳐 카프카와 브로흐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역사’와 쿤데라의 비유에 따르자면 “결코 말해지지 않은 것으로부터 갑자기 촉발된 빛”과도 같은 소설 특유의 ‘아름다움’도 있다. 게다가 소설은 니체 식의 “불확실성의 지혜” 같은 소설 특유의 ‘지혜’까지 제공해 주는 까닭에 쿤데라에게 소설은 시나 음악 혹은 미술이나 영화와 대등한 장르가 아니라 그 모두를 포괄하고 뛰어넘는 ‘예술’ 그 자체인 셈이다.


     이 책 이전에 출간된 두 소설론을 읽은 독자라면 소설의 기술에 관해 쿤데라가 피력한 낯설지 않은 주제들을 여기서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몇 세기에 걸쳐 전개되는 유럽의 소설사나 인간 실존의 비밀을 해명하려는 소설의 기능, 쿤데라가 부여하는 소설 특유의 시학 그리고 소설이 유래한 근본적인 정신과 점점 더 멀어지는 현재 상황 등이 그러한 핵심 주제에 해당한다. 여기서 우선 독자들에게 다소 낯설게 보일 수도 있는 이 책의 제목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보자. 쿤데라는 세상을 가리는 선이해의 커튼을 찢어 내는 것, 이것이 바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같은 작품으로 시작되는 근대소설의 임무라는 점을 강조한다. 즉 “작가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현실의 한 영역을 드러낸다. 이러한 드러냄은 놀라움을 만들어 내고 이제 놀라움은 미학적 즐거움과 미의 감각을 창조해 낸다.” 기존의 두 책에서 쿤데라가 다루었던 주제가 ‘커튼’이라는 매우 절묘한 비유를 통해 이번 책에서 반복되면서 심화된다. 소설이 어떻게 선이해의 커튼을 열어젖히고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실존의 새로운 지평을 보여 주는가를 가급적이면 논쟁적인 어조를 배제한 상태에서, 그러나 자신의 세계가 서서히 사라져 가는 것을 목도하는 자의 우수가 담긴 어조로 말하고 있는 책이 바로 『커튼』이다.


     쿤데라는 이 책에서 세계 문학이라는 커다란 콘텍스트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세계 문학이 그 훌륭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손쉽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이유를 ‘커다란 국가’와 ‘작은 국가’의 경우로 나누어 설명한다. 즉 훌륭한 문학적 자산을 가진 몇몇 유럽 국가들 같은 ‘커다란 국가’들은 자국의 풍부한 문학적 유산으로 만족하기 때문에 세계 문학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반면, ‘작은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문학적 자산이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문학에 있어서의 지방주의’를 고수하면서 세계 문학의 개념에 저항한다. 특히 작은 국가는 “자신의 작가에게 그는 오직 자신에만 속해 있다는 확신”을 주입하면서 “시선을 조국 너머에 고정하는 것, 예술의 초국가적 영토에서 동포들과 합류하는 것은 건방지거나 동포들을 무시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쿤데라는 한 작품의 모든 의미를 ‘자기 나라에서 하는 역할’로 환원하는 ‘작은 콘텍스트의 테러리즘’이말로 세계 문학이라는 커다란 콘텍스트를 배격하고 그에 저항하게 하는 주된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작은 콘텍스트의 테러리즘’을 벗어나 세계 문학이라는 커다란 콘텍스트로 나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 사이의 간극이 크기 때문에 쿤데라는 작은 콘텍스트와 커다란 콘텍스트 사이에 중간 콘텍스트를 설정한다. 예술가에게 국경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어떤 초월적 공간에 속한 것도 아니다. 세계 문학이라는 커다란 콘텍스트는 자칫 잘못하면 이러한 무중력적이고 초월적인 공간이 존재한다는 환상을 가져올 위험이 있다. 예술가는 국가가 아니라 문화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해서 쿤데라는 그가 보헤미아라고 부르는 ‘중부 유럽’의 문화적 전통을 강조하면서 중부 유럽이라는 콘텍스트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룬다.

 

     냉전을 통해 유럽을 동과 서로 양분하는 ‘정치적인’ 해석을 그 ‘문화’의 정체성에 근거한 해석으로 대체하는 것, 이것이 바로 ‘중부 유럽’이라는 콘텍스트를 통해 쿤데라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이다. 그렇다면 중부 유럽이란 무엇인가? ‘그 국경을 정확하게 정의하려는 것은 헛된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중부 유럽은 국가가 아니라 문화 혹은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 국경은 상상적이며 각각의 새로운 역사적 상황에 의거하여 다시 그려져야 한다.’ 오스트리아에서 체코슬로바키아를 거쳐 루마니아에 이르는 이 중부 유럽에 속한 국가들은 두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우선 ‘작은 국가’들이라는 점과 유럽의 문화적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함으로써 유럽 연합의 문화적 원형을 보여 준다는 점이다. 중부 유럽의 비극은 작은 국가이기에 그 ‘유럽성’을 부정당하고 동유럽이라는 정치적인 재단에 의해만들어진 틀 속에 귀속되었다는 사실이다. 쿤데라는 자신의 소설적 유산을 해명하기 위해 최대한의 공간에 최소한의 문화적 다양성을 용인하는 동유럽 대신 최소한의 공간에 최대한의 문화적 다양성을 산출하는 중부 유럽의 콘텍스트를 제시한다.


     무질이나 카프카, 브로흐나 곰브로비치 같은 작가들은 중부 유럽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로서 쿤데라의 소설적 성찰을 살찌우는 원재료에 해당한다. 쿤데라는 『커튼』에서 그 성찰의 폭을 플로베르나 발자크, 도스토옙스키나 프루스트까지 넓히면서 유럽 소설의 역사에 대한 총체적인 조감도를 제시한다. 쿤데라만큼 초국가적인 유럽, 영토로서가 아닌 문화로서 유럽에 남다른 감각과 통찰을 제시한 작가는 드물다. 그는 체코로 대표되는 중부 유럽의 문화권에서 프랑스로 대표되는 서유럽의 문화권까지를 두루 섭렵하고 포용함으로써 유럽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해 깊이 있게 성찰한 대표적인 작가로 평가받는다. ‘소설의 죽음’이라는 고정관념에 맞서 소설이란 아직 사용되지 않은 자원들이 무궁무진한 예술이며 실존적 탐험의 무한한 가능성을 담지한 장르라는 쿤데라의 신념은 이러한 믿음이 깨져 가는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볼 때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 준다.